구로키리시마의 인기를 떠받쳐 온 각오.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정신에 다가간다.
도약의 뒤에는 분투가 있다.
회사의 전환기를 떠받친 사람들이 동분서주하는 기록.
1998년에 태어난 '구로키리시마'. 기리시마 주조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틀림없이 가장 큰 전환기라고 할 수 있는 주제일 것이다. 지방 소주 제조업체의 일개 상품이 순식간에 전국으로 퍼져 일본 전역에서 사랑받는 소주로 성장했다.
이러한 급성장 뒤에는 소주 제조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회사를 떠받친 사람들이 있다.
그중 한 명이 입사 이래 약 40년간 관리 본부에서 기리시마 주조의 도약을 지원해 온 이가사키 시게루 전 상무이사이다.
1986년 이가사키가 입사했을 당시 기리시마 주조는 총 사원 수가 100명 정도에 불과한 소규모 회사였다.
"모두의 얼굴과 이름을 알고 지내는 소박하고 가족 같은 회사였습니다."라고 이가사키는 회상한다.
입사 전 현 밖의 다른 업종에서 일했던 이가사키는 기리시마 소주를 마셔본 적도 없었고 회사에 대해서도 몰랐다. 처음 기리시마 소주를 따뜻한 물에 타서 마셨을 때는 독특한 고구마향에 무심코 얼굴을 찌푸렸다고 한다.
당시 매출이 약 50억 엔에 사원 수가 100명 정도 규모의 회사로서 실적은 매우 좋았지만, 소주 업계 상위 제조업체와 비교하면 그 성장은 부진했다. 그러한 상황을 극복하고 매출 향상을 목표로 하는 가운데, 이전 직장에서 관리 회계를 담당했던 이가사키의 경험은 바로 회사에 필요한 것이었다.
그러다 전환기가 찾아왔다. 1998년 '구로키리시마'가 발매된 것이다. 구로키리시마는 꾸준한 영업 활동에 더해 유명 인사들의 TV 소개를 통해 당시 생산 체제로는 따라가지 못할 정도의 경이적인 속도로 매출이 상승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는 것 같았죠."
이가사키는 당시의 급속한 성장을 떠올린다. 유례 없는 인기에 기쁨의 비명을 지르는 하루하루였지만, 한편으로는 생산량이 출고량을 따라가지 못해 현지 슈퍼마켓에 '1인 1병 한정' 벽보가 걸리기도 했다.
이 무렵에는 고구마 소주 맛에 익숙해진 이가사키였지만, 조금이라도 더 많은 고객에게 상품을 제공할 수 있도록 자신은 마시기를 참았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영진은 각오를 다지고 결단을 내렸다.
당시 구로키리시마는 본사 공장과 시비타 공장의 두 곳에서 생산되었는데, 지속적으로 매출이 늘고 있는 구로키리시마의 공급 안정화를 위해서는 공장 증설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기리시마 주조의 미래를 정하는 결단이었지만 고객에게 상품을 제공하는 것을 최우선시하여 2006년에 시비타 증설 공장, 그로부터 불과 5년 후인 2011년에 본사 증설 공장, 그리고 2018년에 시비타 제2증설 공장을 건설했다.
이가사키는 공장 증설을 위한 자금 조달과 용지 매수에 바쁘게 뛰어다녔다. 은행과의 관계는 좋았지만 2006년 증설로부터 불과 5년 만에 다음 공장을 건설하는 것을 불안하게 여기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런 불안을 떨쳐 버리기 위해 자금 계획이나 사업 계획 등 여러 자료를 제출하여 융자를 신청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어려웠던 것은 용지 매수. 공장 하나를 증설하려면 약 6,000평의 넓은 토지가 필요하다.
"제조 면허 조건으로 본사 공장과 시비타 공장 주변 용지를 반드시 매수해야 했습니다. 그러려면 토지와 농지를 매수하여 공장을 건설할 수 있도록 전용할 필요가 있었지요. 지역에 뿌리를 두고 지역과 함께 발전해 온 기리시마 주조에 있어 농가를 비롯한 지역 주민들은 무척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토지 소유자와 교섭하는 일에 특히 신중을 기했습니다."
농지 중에는 물론 개인 농가가 소유한 토지도 있었다. '평소에 구로키리시마를 마시니까'라며 흔쾌히 허락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여러 사정으로 난색을 표하는 사람도 있었다. 집집을 방문하여 성실히 교섭을 진행했다.
농지를 사용해야 하는 이유, 대체 토지 검토 여부 등 농지를 보호하는 입장에 있는 국가 기관의 설득에는 많은 근거가 요구되었다. 미야자키현과 미야코노조시의 관계 기관을 포함하여 다양한 장소를 여러 차례 방문하여 하나씩 문제를 해결한 결과 공장 한 곳의 용지 매수에만 2년 이상의 세월이 걸렸다고 한다.
공장이 늘어나면 당연히 인력도 필요한 법이다. 인력 확보는 물론 입사 후 교육 및 배치와 병행하여 정비를 추진했다.
"몇 년 후에 공장을 건설할 계획을 세우고 건설을 위한 교섭과 신청을 비롯하여 필요한 추가 인력을 정비하는 것. 공장을 증설할 때마다 이를 반복했습니다. 일하는 사원의 증가와 회사의 성장에 맞춰 부서별 방향성과 목표를 전사적으로 조율해 가는 '목표 관리 시스템'을 도입한 것도 인상 깊이 남아 있네요. 일이 순조롭게 풀리지 않을 때도 있는 등 어지럽게 휘몰아치는 매일이었어요."
구로키리시마의 승승장구를 계속 지원하던 이가사키는 2023년에 임원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기리시마 주조와 본격 소주에 대한 열정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하나는 자신에게 성실할 것. 그리고 무슨 일이든 호기심과 큰 그림을 바라보는 시야로 과감히 도전할 것."
맛있는 소주를 제공하기 위해 이가사키가 지켜 온 신념이다. 그리고 앞으로 기리시마 주조를 이끌어 갈 사원들도 그러기를 바란다고 온화한 표정으로 말한다.
당시 격동의 나날을 극복한 이가사키와 같은 사원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기리시마 주조도 존재하지 않았을 터이다. 이 정신은 지금의 기리시마 주조를 떠받치는 사원들에게 분명히 계승되어 발전을 거듭해 가고 있다.
※20세 미만인 분에게 음주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는 것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