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품종 개발이라는 측면에서
아카키리시마의 탄생에 다가간다.
"아카키리시마는 정말 대단한 술이었어요. 이게 정말 소주가 맞나 싶을 정도였지요. 이거라면 되겠다고 확신했어요" 아카키리시마의 원료 고구마인 '무라사키마사리' 개발을 비롯해 고구마 연구의 제1인자로 알려진 야마카와 오사무 박사는 당시의 충격을 떠올리며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이야기했다.
야마카와 오사무 박사와 기리시마 주조의 인연은 1972년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미야자키현 미야코노조시에서 고구마 연구를 진행하고 있던 야마카와 오사무 박사는 그때 처음으로 기리시마 주조의 소주를 맛보았다. 고구마 특유의 냄새가 느껴지지 않는 맛. 깔끔한 목넘김. 소주의 새로운 가능성에 놀라움과 확신을 동시에 느꼈다고 한다.
당시 미야코노조시에서는 해마다 한 번 소주 회사들이 정보를 공유하는 자리가 있었고 야마카와 오사무 박사는 고구마를 민간 기업과 공동 활용하는 역할을 맡아 그 회의에 참석했다. 그 자리에는 기리시마 주조도 참여하고 있었다. 의견 교환이 활발해지던 가운데 야마카와 오사무 박사는 결심한 듯 이렇게 말했다. "'고가네센간'만으로 소주를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더 다양한 품종을 사용해 규슈 이외의 지역에서도 받아들여질 수 있는 소주를 만들어야 합니다" 순간 회의장은 조용해졌다. "소주 제조를 잘 모르는 연구자가 괜한 말을 하고 있다"는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소주 문화권 밖에서 고구마 연구자로 경력을 쌓아 온 야마카와 오사무 박사의 ‘솔직한’ 의견이었다.
1966년에 품종 등록된 '고가네센간'은 남규슈의 소주 제조에서 매우 귀하게 활용되어 왔지만 소주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다른 품종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맛을 만들어 내고 소주에 익숙하지 않은 규슈 이외의 지역도 개척해 나가야 한다. 야마카와 오사무 박사는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세월이 흘러 1991년경. 야마카와 오사무 박사에게 국가로부터 고구마 재배 수요를 다시 활성화하라는 임무가 주어졌다. 그가 제안한 것은 그때까지의 주류와는 다른, 색소용으로 활용할 수 있는 보라색이나 주황색 등 다양한 육색을 가진 고구마 품종 개발이었다.
"저는 그렇게 집착하는 성격이 아닙니다. 아무리 전통이 있다고 해도 미래가 그다지 밝지 않다고 생각되면 과감하게 그만둡니다. 저는 새로운 것에만 관심이 있으니까요"
이 도전은 오랫동안 전분용 고구마 개발이 중심이었던 규슈에서 큰 변화였다. 그러나 주어진 시간은 길지 않았다.
"보통 품종 육성에는 10년 정도 걸리는데 그렇게 기다릴 수 없으니 3년에서 5년 안에 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책임을 지고 속도를 내서 추진하지 않으면 제때 맞출 수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오직 계속해서 교배를 진행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득하게 느껴질 만큼 반복적인 작업에 몰두할 각오를 하고 끝없는 교배 작업을 이어 가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토시아닌 색소에서 비롯된 선명한 보라색과 풍부한 향을 지닌 품종 '아야무라사키'였다. 놀랍게도 이 아야무라사키는 색소를 지니지 않은 품종과의 교배로 탄생한 것이었다. 한결같이 이어 온 교배 작업이 마침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색소용으로 개발된 아야무라사키였지만 당시의 수요는 미미한 수준이었다. 시장에서 널리 확산될 가능성도 높지 않았다. 관점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야마카와 오사무 박사는 새로운 품종으로 소주를 만드는 데 적극적이었던 기리시마 주조와 손을 잡고 소주 원료로서의 시험 양조를 시작했다. 색소용으로는 훌륭했던 아야무라사키였지만 소주 원료로서는 적합하지 않았다. 떫은맛이 강하고 철과 같은 향이 나기도 했다. 형태도 고르지 않아 취급하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해서 멈춰 설 수는 없었다.
야마카와 오사무 박사는 소주 제조에 적합한 품종이 나올 때까지 끈기 있게 품종 개량을 이어 갔다. 수없이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새로운 품종이 나올 때마다 양조 시험을 실시했다. 그렇게 수많은 실패를 거듭한 끝에 '무라사키마사리'가 탄생했다. 소주 원료로서 아야무라사키를 크게 뛰어넘는 완성도를 지닌 품종이었다.
기리시마 주조의 개발진 역시 6년이라는 세월을 들여 끈기 있게 상품화를 목표로 노력한 끝에 마침내 아카키리시마를 완성했다. 완성되자마자 야마카와 오사무 박사에게도 먼저 대접되었다.
평소 술을 마시지 않는 야마카와 오사무 박사도 그 향기의 뛰어남과 은은한 단맛, 부드러운 목넘김에 감탄할 정도의 완성도였다.
이제 아카키리시마는 그 맛으로 인해 폭넓은 고객에게 사랑받는 제품이 되었다. 그것은 과거 회의 자리에서 야마카와 오사무 박사가 목표로 해야 한다고 말했던 모습과도 겹쳐 보인다.
'무라사키마사리'는 야마카와 오사무 박사가 오랜 시간에 걸쳐 이뤄 낸 연구의 성과이다. 그 소중한 품종을 왜 기리시마 주조에 맡겨 보려고 생각했는지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결국은 성실함입니다. 기리시마 주조의 직원들만이 정말 끈질기게 저에게 계속 상담을 요청해 왔습니다. 맡긴 품종에 대해서도 반드시 피드백을 해 주었고 이 사람들이라면 괜찮겠다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회상하는 표정에서도 두 사람이 쌓아 온 신뢰 관계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사람이 이미 걸어간 길에는 보물이 없다"고 야마카와 오사무 박사는 말한다. 기리시마 주조에 아카키리시마라는 보물을 가져다준 것은 아무도 걸어 보지 않은 미래를 바라보는 야마카와 오사무 박사의 자세였던 것이다.
※20세 미만인 분에게 음주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는 것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